지부소개
안동사진의 어제와 오늘 / 지부소개 / 안동사진의 어제와 오늘 / 초창기

본 내용은 1997년말 당시 김복영 안동지부장이 안동시사(安東市史)에 기고한 내용을 본인의 승낙하에 전제하였으며 "4. 안동사진의 오늘" 부터는 현 강성안 지부장이 보필(補筆) 하였음을 알립니다.

1. 초창기 안동 사진계의 동향

안동에 사진이 언제 보급되고, 소위 예술창작으로서의 사진을 누가 처음 시작했는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안동에서 사진관을 하고 있는 분들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볼 때 안동에서 일찍이 사진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는 이인홍을 들 수 있다. 정확한 연대를 알기는 어려우나 그는 대체로 1920년대 전반에 일본에 건너가 3개월의 야간사진학교를 수료한 후 안동 역전에서 안동 최초의 사진관인 '금강사진관'을 열고 영업을 시작하여 그 후 25년 동안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이 지역 사진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진다. 안동의 대표적인 사진관이었던 대륙사진관의 윤수암, 중앙사진관의 임봉우 등은 그의 수제자였다고 한다.

직업사진사가 아니면서도 1930년대의 사진첩을 남기고 있는 손명술은 세련되지는 못했어도 나름대로 작품사진을 찍고자 하는 의욕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남아있는 그의 사진첩에는 법흥동 7층전탑부근, 갑술년 대홍수때 물에 잠긴 경북선 철도, 법룡사 옛모습, 시장부근 등 1930년대의 안동시 일원을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어 그가 창작사진을 남기는데는 미흡했어도 사진의 본령인 기록을 남기는데는 크게 이바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사진첩에는 이인홍이 찍은 자신의 사진과, 손명술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대형카메라 옆에 선 이인홍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어 이 두 사람이 한사람은 직업사진가로 또 한사람은 취미사진가로 당시 안동사진계를 대표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 이후 40·50년대에 안동에서 이렇다할 사진활동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해방과 6·25를 거치는 동안 지역사진계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윤수암이 상당량의 사진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근래에 들어와서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작품사진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7년경에 결성된 {안동사우회}를 처음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안동사우회는 윤수암(당시 대륙사진관 경영), 이인호(당시 성광사 경영), 김석기(당시 안동교육장) 3인으로 결성되어 안동에서는 처음으로 사진작품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후 이 모임에는 장기환(당시 안동교대 학장), 오복수(당시 오내과 원장), 김인수(당시 안동교대 교수), 이수창(당시 안동교대 교수), 김수진(당시 경안여중 교사), 서대교(당시 성광사 근무)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1971년 제1회 안동민속축제시에 전시회를 열고 수차의 전시회와 촬영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70년대 중엽이후 안동사우회의 활동은 거의 중단되고, 당시 안동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던 계철순과 대도사진관을 경영하던 유광수, 확대사를 경영하던 홍성광 등이 개인적으로 조금씩 활동을 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1978년에 들어 홍성광, 김성구, 이기윤, 박찬원, 추교진 등 5명이 {예영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안동의 본격적인 첫 창작사진가들의 모임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이들은 1979년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안동문화회관 201호실에서 첫 전시회를 열고 회원 5명이 각 2점씩의 작품을 실은 도록도 발간하였다.

성광칼라이보다 앞서 홍성광은 1979년 3월 안동문화회관에서 36점의 작품으로 첫 개인전을 열어 안동에 본격적인 사진작품 전시회를 선보이게 된다. 그의 개인전은 안동에서는 최초의 창작사진 개인전이었다는 점에서 의의 있는 것이었다. 그는 2년 뒤인 1981년 3월에 같은 장소에서 32점의 작품으로 다시 개인전을 가짐으로써 그때까지 소극적 활동에 머물렀거나, 개인적으로 작품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 이후 안동의 사진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1970년대 후반의 사진인들의 동향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점차 활발해지기 시작하여 보다 조직적인 모임을 만들자는 논의가 성광칼라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경북 북부지역에서 유일한 칼라사진 현상소였던 '성광칼라'는 1971년 9월부터 시작했던 수동칼라작업을 1978년 자동화 시스템으로 갖추면서 상호도 성광사에서 성광칼라로 바꾸고 본격적인 칼라사진 서비스를 실시하였다. 이는 칼라사진을 촬영당일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사진인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고, 특히 사장 서대교의 작품사진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앞서 말한 예영회 작품전을 후원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상당기간 각종 사진전시회를 후원하여 안동의 창작사진 활동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데 일정몫의 기여를 하였다.

당시 성광사에 근무하던 이병인과 사진현상을 위해 성광사에 자주 들리던 계철순, 권찬규, 그리고 유광수, 홍성광 등이 적극적으로 사진인의 조직화에 대하여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우선 전시회를 열어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 동호회를 결성하기로 논의하고 그 결과 1981년 5월 5일부터 9일까지 안동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 전시회는 이제까지의 개인적이고 산발적인 활동을 벗어나서 안동에서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함께 모여 이루어낸 것으로서 안동지역 창작사진계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할만 하다. 이 전시회에 출품한 사람들은 계철순, 홍성광, 유광수, 이무기, 김영호, 이병인, 권찬규, 권용태, 최광진, 권오걸, 이운규 등이다.

전시회 이후 모임 결성 움직임은 이미 모임을 만들고 전시회까지 가졌던 예영회의 홍성광, 박찬원, 이기윤 등이 중심이 되어 1981년 6월 14일 예영회를 모체로 하고 회의 이름을 안동을 뜻하는 '영가사우회'로 바꾸어 새로이 모임을 결성하였다. 창립회원은 박찬원, 민문식, 권태조, 이국희, 김애경, 이기윤, 권오걸, 이기목, 백종대, 남승훈, 이운규, 홍윤옥, 홍성광 등 13명이고 초대회장은 박찬원이 맡았다.